기사 / 한경비즈니스

진흙 속에서 핀 연꽃

2026.09.13. 한경비즈니스에 법무법인 YK 김윤정 변호사의 기고문이 게재되었습니다.

 

 

“지인과의 다툼은 재산의 손실로 끝나지만 가족과의 다툼은 영혼의 파괴로 남는다.”

거의 20년 가까이 이혼, 상속 분쟁 등 가족들 간의 분쟁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장기간 그들 사이에 맺었던 관계의 의미, 내가 타인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특히 나 스스로를 타인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어준 적은 없는지 등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태도의 겹겹이 쌓인 결과가 소송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족 분쟁은 관계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고 확대한다. 남남이라면 쉽게 정리하고 잊어버릴 일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세월과 감정의 찌꺼기 때문에 끝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내 편이라 믿었던 이들에 대한 배신감, 재산 분할 과정에서 드러나는 치부, 그리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두고 벌이는 다툼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심층적인 심리적 고통 중 하나다.

오랫동안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이들의 상처를 마주해 왔다. 그중에서도 오랜 가정폭력과 지독한 가스라이팅에 시달리다 처참한 얼굴로 찾아왔던 한 의뢰인의 모습이 선명하다. 모든 자아를 상실한 채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소송의 긴 터널을 지나 비로소 판결을 손에 쥐게 되었다.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난 날 그녀는 완전히 달라진 얼굴로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농담처럼 가볍게 말을 건넸다.

“변호사님, 저 사실 원래 이렇게 예뻤던 사람이에요.”

그동안 폭력과 억압의 진흙 속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본래의 자아를 비로소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소송의 끝자락에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던 폐허 속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변모하여 단단하게 일어서는 사람들이다. 소송의 승패와 관련 없이 누군가에게 의지하였던 삶과 작별하고 비로소 ‘내 삶의 주체’로 거듭나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숙연함을 안겨준다.

긴 소송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을 정화하는 혹독한 통과의례가 된다. 남의 시선과 가족의 기대에 맞춰 희생하며 살던 삶을 멈추고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묻게 만든다. 억울함에 눈물 흘리던 밤들을 지나 온전히 혼자 서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연꽃은 맑은 물이 아니라 더럽고 탁한 진흙탕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다. 가족이라는 가장 깊고 아픈 상처의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은 그 어떤 꽃보다 강인하고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정의 문턱을 넘으며 인생의 가장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고통은 비로소 진짜 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뼈아프지만 값진 배움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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